하버드 GSD의
설계 교육을 묻다
인터뷰이 니얼 커크우드 교수
인터뷰어 박명권 발행인
정리 양다빈, 김정은
사진 윤주열, 이형주
지난 7월 17일 본지 발행인이 그룹한 사옥에서 하버드 GSD의 전 학과장 니얼 커크우드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설계 교육자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핵심 지식을 가려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며,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요즘에도 설계 스튜디오에서 아날로그 방식이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설계 중심으로 구성된 하버드 GSD의 교과 과정과
통합적 설계 스튜디오에 최적화된 ‘건드 홀’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_ 편집자 주
Q. 『환경과조경』 이번호 특집의 주제는 ‘설계 교육’이다. 전국 조경학과의 설계 담당 교수 열세 분에게 설계 교육의 철학과 설계 스튜디오의 진행 방식 등에 관해 질문했다. 오랜 시간 설계 중심 대학원에서 가르쳐 온 당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며 인터뷰를 시작하고자한다. 조경 교육에서 설계 교육은 왜 중요한가? 또 설계 교육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설계는 조경 교육에 있어서 명백하게 중심적 역할을 한다. 예비 디자이너와 계획가인 새로운 세대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대두되는 연구 내용을 제시하는 역할, 즉 설계 교육 자체가 조경의 다양한 지식을 배양하는 툴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모든 조경 교과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 내용―역사, 식재 등―은 비슷비슷하다.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이하 하버드 GSD)의 교육은 1901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등 어학과 토목공학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의 교과 과정과 2009년 내가 하버드 GSD 조경학과장(2003~2009)으로 있던 시기의 과정을 비교해 보면, 그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차이가 없다. 즉 조경 교육의 핵심core이나 철학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튜디오 교육 역시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직접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야 하는 스튜디오 교육은 리플렉티브 프랙티스reflective practice이자 주관적인 사고 과정이다. 학교 측은 1대1로 가르쳐야 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반겨하지 않는 측면도 있는데, (대형 강의와 비교해) 상대적인 비효율성과 수치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평가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경 교육에서 그 과정을 보다 객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사키 어소시에이츠Sasaki Associates를 설립한 히데오 사사키Hideo Sasaki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학생 개개인에게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통의 대상지를 스튜디오 과제로 내주고 학생들이 과제를 해오면 10여 개의 과제를 벽에 일렬로 붙였다. 기존 환경을 가장 많이 보존하는 안에서부터 가장 과감하게 변화를 가져오는 안까지, 또는 가장 녹지가 많은 안에서 가장 녹지가 적은 안 순으로 나열을 한다. 이 자체가 스튜디오 강의법이다. “같은 대상지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생각과 안을 구상할 수 있다”고 말이다. 특정 안을 강조하거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고, 각각의 안이 갖고 있는 생각과 장점, 특징 등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생각의 발전을 유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난 15~20년 사이 스튜디오 시스템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의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해 온 것이다. 근래에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아날로그 방식만 존재하던 스튜디오 시스템을 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요즘 학생들은 크리틱을 받기 위해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난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진행하는 크리틱을 거부하는데, 이런 경우 학생들에게 “네가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도면의 스케일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럼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변명하기에 바쁘다. 혹은 “우리가 3분 전에 봤던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폴더를 뒤적거린다. 나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크리틱은 특정 스케일로 프린트하거나 핸드 드로잉을 벽면 혹은 책상에 펼쳐 두고 해야 한다. 이는 컴퓨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과정을 위해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설계법은 시공 도면을 그리거나 적산 등의 과정에서는 매우 좋은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개념 생성 단계나 디자인 발전 단계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이 더욱 적합하다.
Q. 역사적으로, 특히 20세기 말 이후 하버드 GSD 조경학과의 설계 스튜디오 교육의 지향점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A. 그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나 회복탄력성resilience 등에 대한 전문가가 생겨났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학교 밖 실무의 98%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아카데믹한 측면에 집중하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러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실무를 병행하지 않기에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행’은 변화한다. 과거 유행을 주도했던 개념이나 이론들 가운데 이제는 거론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때 구조주의structuralism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되면서 관련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 대한 담론이 사라졌다. 물론 이런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변화하고 있느냐를 이야기하기 전에, ‘무엇이 변화하지 않는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핵심 지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런던의 템스 강은 1970년대에는 6주씩이나 얼어서 녹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축제를 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지구의 온도는 40여 년에 걸쳐 변해 왔다. 마치 지금 새로운 이슈처럼 기후변화를 이야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는 새로운 변화가 아니다.
따라서 교육자나 교육 기관에서는 지속적으로 중요한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별하여 그에 따라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변화에 반대한다거나 변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핵심 지식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그러한 지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Q. 하버드 GSD 조경학과는 설계 스튜디오 교육과 이론, 역사, 생태학, 테크놀로지 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A. 주요 관련 분야들이 매주 하나의 워크숍 형태로 설계 스튜디오 안에 포함된다. 예를 들면, 스튜디오 수업 일정 중 특정 주에 생태나 역사 혹은 이론 워크숍 등 임베디드 워크숍embedded workshop이 진행된다. 이 워크숍에는 다른 분야의 전문 교수를 초빙한다. 이러한 역사나 이론 워크숍에서는 교육 내용에 대한 (소논문 정도 난이도의) 에세이를 써내게 한다. 이렇게 두 가지 방식, 임베디드 워크숍과 밀도 있는 에세이를 통해 스튜디오 수업 내에서 연관 분야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배워나가게 한다.
다른 스튜디오의 형식을 예로 들면, 조경학과의 두 번째 학기에는 프랭클린 공원에 대해 역사적 관점의 개입을 시도하는 (물론 페이퍼 상으로) 스튜디오 수업이 있다. 이 스튜디오에서는 설계적 개입을 위해 역사적 사실과 변화 양상에 대한 심도 깊은 리서치를 요구한다. 동시에 프랭클린 공원과 유사한 여러 공원에 대한 리서치도 진행한다.
Q. 최근 들어 분야 간 협력과 융합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프로젝트가 다양한 전문 분야의 컨소시엄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학의 설계 교육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하버드GSD에서는 이러한 융합적·통합적 설계 교육을 하고 있는가?
A. 그렇다. 조경학과의 주요 학위 과정은 3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학기당 하나의 스튜디오씩 총 6개의 스튜디오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그중 첫 4번의 스튜디오는 조경학과에 집중하는 핵심 스튜디오이고, 나머지는 옵션 스튜디오다. 5학기와 6학기에는 건축, 조경, 도시설계 등의 학과에서 18개의 주제와 형식, 운영 방식을 가진 스튜디오를 한 번에 모든 학생들에게 열게 된다. 건축학과에서 6개, 조경학과에서 5개, 도시 관련 학과에서 나머지 7개 정도의 수업을 준비한다. 하버드 GSD 내부 교수가 50%, 외부 교수가 50%로 참여해 다양성을 유지하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옵션 스튜디오 첫 주에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학생이 대강당에 모인다. 그리고 18개 스튜디오를 진행하는 교수 모두가 강단에 올라 자기 수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내가 하는 수업은 이런 제목이고, 각 주차마다 어떤 주제를 다루며, 필드 스터디를 얼마나 하며, 어떤 결과물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등에 대한 이야기를 10분 내에 모두 설명한다. 일종의 오디션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수업을 홍보하는 것이다. 조금 긴장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수나 학생 모두 하나의 축제와 같이 여기고 참여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프리뷰가 끝나고 나면, 1순위부터 6순위까지 자기가 듣고 싶은 수업을 적어 내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개발해 낸 알고리즘 시스템이 결정하게 둔다. 이를 추첨 방식lottery system이라고도 부른다. 이 알고리즘 시스템은 모든 학생이 ‘만족’(3순위) 이상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결과를 긍정적 방향으로 극대화한다.
*환경과조경 328호(2015년 8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