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 박명권에게 듣는 ‘일곱 가지’ 해답
환경과조경,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출간 기념 ‘북 토크’ 행사 개최
지난 30일 그룹한갤러리에서 열린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출간 기념 ‘북 토크’ 행사에는 약 150여 명의 조경업계 종사자 및 관련 학과 대학생들이 참석했다. ⓒ유청오
[환경과조경 이형주 기자] 2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국 조경의 초창기부터 활동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조경가 박명권이 독자들과 함께 ‘우리의 삶과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시 문화 환경의 실마리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과조경은 지난 30일 방배동 그룹한 신사옥 내 그룹한갤러리에서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출간 기념 ‘북 토크’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북 토크 행사에는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교수,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 등 조경계 종사자들과 관련 학과 대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인사말과 축사에 이은 오프닝 영상 시청, 영상 질문 및 저자 답변, 독자와의 대화, 저자 사인회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프로그램은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책을 관통하는 ‘자연과 인간, 과학과 예술, 조경과 도시, 디자인과 문화, 공간과 시간, 채움과 비움, 전통과 한국성’ 등 일곱 가지 키워드와 관련된 전문가에게 사전에 영상으로 질문을 받고 저자가 현장에서 답변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의 저자인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 ⓒ유청오
커크우드 교수는 축사를 통해 “동 시대 조경의 리더인 박명권 대표의 작업은 설계에 지성을 투여한 혁신적이고 창제하며 견고한 예술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지적 설계 작업에는 자연과 인간,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 개형 이론이 때로는 실천적 형식으로 또 때로는 미학적 언어로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드로잉과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설계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는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소통하는 조경가다”고 평했다.
임승빈 원장은 “조경가로서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여러 조경단체 임원으로서 많은 사업을 후원하고 있으며, 세계조경가협회 1등상 그룹한 어워드를 수년 동안 후원해오는 등 적극적인 사회 참여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는 디자인은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상호의존적이라는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출판을 계기로 지난 25년간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앞으로 지구촌을 행복하게 만드는 글로벌 다국적 설계회사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축사자로 참석한 니얼 커크우드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교수와 임승빈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원장 ⓒ유청오
질문 영상은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자연과 인간)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과학과 예술)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조경과 도시) ▲배정한 서울대학교 교수(디자인과 문화) ▲이호영 HLD 대표(공간과 시간) ▲주신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채움과 비움) ▲박희성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전통과 한국성) 등 7인의 전문가가 보내왔다.
이날 저자인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이하 저자)는 “책은 결국 나의 이야기다. 대가의 이론은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호응하고 화답하면서 이론으로 정립되고 대가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조경가들도 자기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고 그것을 이론으로 정리한다면 대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며 책을 쓴 배경을 밝혔다.
김아연 교수는 영상을 통해 “조경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당 시대의 자연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시대에는 공포의 의미, 어떤 문화권에선 풍요의 의미기도 했다”며 “저자가 동 시대 우리나라 자연을 정의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된다. 그룹한을 관통하는 자연에 대한 철학이나 개념, 정의가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이에 저자는 “자연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지만 때로는 경쟁, 때로는 화합하는 어려운 관계다. 조경은 자연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순수한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지구상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생명체다. 조경이 자연을 다룬다고 하지만 어느 편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헷갈린다. 조경의 역사로 보더라도 자연관은 시대별로 변천해왔다. 조경가가 바라보는 자연은 인간의 편으로 좀 더 기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박제된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자연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박명권 대표(좌)가 영상질문에 대해 책 관련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답하고 있다. ⓒ유청오
서영애 소장은 저자가 이론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자연과 예술을 양분해서 설명하고 있으나 예술 쪽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제임스 코너는 진정한 조경설계는 과학적인 분석과 탐구에 기반한 자연 생태적 과정에 예술적인 작가의 직관이나 능력, 즉 조경의 상상력을 가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생태 상상적 조경이 과학과 예술의 접점이라 생각한다. 조경의 정체성은 과학과 예술의 조화를 통해서 구축해나가야 되는 것”이라며 조경설계의 무게를 과학과 예술 어느 한쪽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세훈 교수의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경험하게 될 가장 심각한 도시 문제는 무엇이고, 도시 문제에 대응하는 조경의 업역 확대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란 질문에 저자는 “여러 가지 도시 문제 중 조경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지구의 기후변화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경가는 지구에 있는 인간이 개발한 모든 표피를 녹색으로 회복시켜 주는 노력을 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배정한 교수의 “작업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작품으로는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감명 받은 작품이 많지만, 답사를 갔을 때 문화적인 충격을 받은 작품으로 프로비던스의 워터파이어와 뒤스부르크 노드 파크를 소개했다.
북토크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이 현장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모습 ⓒ유청오
이호영 소장은 영상에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현대인들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지고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사회적인 주변 환경 변화에 공원이 상호작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신하 교수는 “비운다는 것은 프로젝트 관계자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책에서 말한 비움의 철학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란 물음에 저자는 “비우는 설계를 할 때는 과학적인 부분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에 필요 이상의 것을 채우지 않았나 싶다. 한옥의 지혜처럼 비우면서 채우는 것을 발굴하고 증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희성 교수는 ‘전통과 한국성’에 대해 ▲전통성을 드러내는 그룹한만의 고유한 설계기법 ▲전통의 이질성에 대한 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 ▲과거를 새롭게 재현하는 의무감 등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통과 한국성에 대한 본인의 고민과 경험을 토대로 “초기 작업에선 형태적인 모방에 치우쳤다. 그 다음엔 전통의 자연관에 주목했다. 선조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간을 만들었는지 들여다봤다. 내부와 외부를 심리적으로만 경계 짓고 물리적으로 막지 않았던 소쇄원 오곡문의 사례, 우리 전통마을을 만들었던 경관 이론, 좋은 경치 속에 터를 잡았던 행위 등을 설계에 접목했다”며 “조경설계가 세계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형태만을 모방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정신을 찾아내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입혔을 때 진정으로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디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가 끝나고 이어진 리셉션 자리에 참석한 한 조경학과 학생은 “조경 전공자로서 국내 최대 규모의 조경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명권 대표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선배 조경가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 됐고, 서로 만날 기회를 갖기 어려운 조경학과 학생들 간 교류의 자리까지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에 참석한 독자에게 직접 질문을 받고 있는 박명권 대표 ⓒ유청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저자 사인회를 진행 중인 박명권 대표 ⓒ유청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출간 기념 ‘북 토크’ 행사 참석자들과 저자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청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