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 라펜트 - "옴스테드 디자인철학, 여전히 유효하다" |
작성일 13-10-11 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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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테드 디자인철학, 여전히 유효하다"비톨드 립친스키와의 대담라펜트l기사입력2013-10-02
밴쿠버는 기업의 상업적 개발 유인을 도시설계에 결합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이규
Q. 당신의 회고담을 담은 책 『My Two Polish Grand fathers』에는 젊은 시절 유럽 여행 중, 특히 지중해의 외딴섬 포르멘테라에서 마주쳤던 뜻밖의 경험들과 우연한 사건들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20대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습니까?: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A. 제가 건축가로서의 경험을 쌓아온 과정 중 특히 첫 번째였던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습니다. 포르멘테라에서 프랑스 조각가를 위해 작은 집을 설계하는 일이었지요.
포르멘테라는 발레아레스제도에서도 가장 작은 섬입니다.
저는 1967년에 거기서 4개월을 보냈는데, 그 기간 동안 저는 학교에서 배운 건축 교육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포르멘테라처럼 황량하고, 돌이 많은 자연환경에서 제가 유일하게 배워왔던 ‘모던’건축은 영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제게는 대안을 떠올릴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 젊은 건축가가 자신의 인생에서 첫 작업을 수주했고, 대단한 기회를 잡은 거죠. 그런데 곧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지요.
몇 번의 잘못된 시도 끝에, 저는 그 집을 설계하는 것을 접어두고 포르멘테라의 전통적인 돌집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오래된 집에 가서 스케치를 하고, 치수를 재고, 정밀한 드로잉을 그렸습니다. 결국 저는 어떤 하나의 집을 설계했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거기있는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Q . 당신이 건물과 공간을 비평하는 방식은 마치 인류학자의 현지조사 작업을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거주하고 있는지 관찰하며, 설계의 사회적인 맥락에 무게를 둠으로써, 여느 책상물림 예술가들의 비평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당신이 비평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는 무엇입니까?
A. 인류학자와의 비교가 마음에 듭니다. 저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자녀로서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캐나다에서 학교를 마쳤습니다. 항상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 낯선 땅에 도착한 인류학자의 심정과 비슷할 겁니다. 대개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저는 집 안과 밖에서 서로 상당히 다른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친구 집에 놀러갔었는데, 그의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각자 쟁반 위에다 저녁밥을 놓고 먹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저희 부모님은 절대 그런 식으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색다른 경험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후 제 주위에 있는 것들만 옳다고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버릇은 특히 가정사에 대한 연구를 할 때 큰 도움이 됐는데요. 지나간 과거의 기이한 세계를 이해하는 일, 혹은 멀리 개도국에서 일할 때 낯선 주변 상황을 납득하여 받아들이는 일은, 어린 시절 커가면서 느꼈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Q. 비평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도시와 건축 비평이 가진 가치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비평이 중요한 것이라면 왜 그렇습니까?
A. 어떤 비평가들은 자신의 역할이 대중을 일깨우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것은 대중에게 어떤 특정한 건축의 경향을 좋아하라고 설득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비평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설계자가 어떤 하나의 건물과 장소에서 성취하고자 했던 목적을 풀어서 해명하는 것입니다.
또 설계자의 디자인 솔루션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문화적 배경까지 규명하려 했습니다. 건축 역시 과거의 문화적 유산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는 과정은 건축가와 발주자, 시공자, 사용자 사이의 강렬한 협업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입니다.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보다 잘 파악하고, 그 결과물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힘들을 이해하면 향후에 보다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많은 건물들이 공공부문과 지역 커뮤니티에 의한 리뷰과정을 거치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공공설계를 위해서는 설계자에게 디자인에 대한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특정한 공공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중적 힘이 나쁜 건축을 막을 때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좋은 건축을 가져오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공공의 리뷰 과정은 너무도 대결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설계자와 고객사이의 친밀한 대화와 크게 대비됩니다.
저서 『A Clearing in the Distance』에 대해
Q. 왜 지금에 와서 옴스테드를 재조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세상을 떠나고 한 세기가 흐른 시점에서, 옴스테드의 아이디어들이 아직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A.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옴스테드가 설계한 마운트로열공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소박한 계기일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옴스테드의 공원들은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여전히 중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옴스테드의 디자인철학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특히 요즘과 같이 사람들이 각종 야외활동이나 자연환경, 그리고 녹지공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똑같이 19세기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옴스테드의 친구였던 H. H. Richardson의 건축물은 지나간 시절의 역사적인 표현에 머물러있음에 반해, 옴스테드의 공원들은 상징적 의미,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살아서 변화한다는 점에 차이를 보입니다.
Q. 옴스테드가 살았던 시기와 현대 사회를 비교할 때 달라진 조건은 무엇입니까? ‘공원’이나 ‘경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시대에 맞춰 많이 바뀌었다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에 옴스테드의 작업은 오히려 도시계획에 가까운 듯한데, 요즘 조경가들의 작업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A. 옴스테드는 요새 말하는 환경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훼손되지 않은 자연 환경에 대한 경외감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설계한 경관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지, 단순히 보전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경관이 사람들의 심성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옴스테드의 시대에는 영화도 없었고, 텔레비전이나 대중매체도 없었지요. 공원이 도시의 사교 생활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옴스테드가 일했던 19세기에는 도시계획이라는 분야가 생기기 전이었고, 그가 현대적 의미의 도시계획가와 조경가의 역할을 병행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옴스테드는 ‘Landscape Architect’라는 명칭을 꺼려하기도 했습니다. 이 두 분야(조경, 도시계획)가 완전히 분리된 것은 20세기 중반에 와서였고, 그 결과 조경가의 책임 영역이 축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경가가 대개 ‘미적인 향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옴스테드가 쥐고 있었던, 도시계획에 대한 근본적이고 지적인 결정권은 조경가의 손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Q. 최근에 브룩클린의 프로스펙트 공원을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당신이 언급한 아득한 경치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실제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룩클린에 사는 제 친구들도 프로스펙트 공원을 최고로 꼽을 정도인데, 막상 가보니 사람들로 꽉 차 있어 그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 공원의 성공 요인이라 보십니까?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 외에 다른 것이 있습니까?
A. 옴스테드와 칼버트 복스가 합작한 최고의 작품은 프로스펙트 공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은 옴스테드와 복스가 영국의 경관 전통에서 차용한 공원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지요. 개방된 초지, 우거진 숲, 그리고 거대한 면적의 물이 그것입니다.
프로스펙트 공원을 설계할 때 이미 이 두 사람은 센트럴파크를 통해 많은 경험을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거의 정사각형 모양에 가까운 프로스펙트 공원은 길고 좁다란 모양의 센트럴파크보다 도시공원으로 적절한 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복스는 부지 전체가 도로에 의해 분할되지 않은 하나의 연속된 공간이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프로스펙트 공원은 센트럴파크와 마찬가지로 이 두 사람이 설계와 시공을 모두 담당한 몇 안 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후에 옴스테드는 전적으로 설계에만 참여할 뿐, 시공에 대한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게 되는데, 이러한 점은 막바지 설계 변경이나 공사 중 현장 여건에 맞는 조정을 어렵게 했습니다.
Q. 현대 도시 환경에서 ‘이상적인 경관’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도시가 점점 고밀화될수록, 또 사람들의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자전거, 조깅, 걷기, 각종 게임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갈수록 공원은 도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새로운 공원이 조성된 이유입니다. 옴스테드는 비단 공원뿐만 아니라, 파크웨이나 가로수로 조성된 거리를 통해 도시 공간에 녹지를 연장시킬 전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공원은 보다 더 광범하고 활동적인 레크리에이션 수요에 대처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옴스테드의 디자인이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심플한 오픈스페이스의 매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요즘 조경가들 중에는 강한 기하학적 선형이나 복잡한 수 공간, 혹은 시설물에 집착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Q .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결함을 안고 있는 콘셉트입니다. 랜드스케이프는 랜드스케이프이고, 어바니즘은 어바니즘으로서, 별개의 것입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란, 조경가들의 입장에서 과거에 도시계획가들에게 빼앗겼던 계획에 대한 권위를 되찾아오자는 수긍할만한 전략에 지나지 않습니다.
1960년대에 이미 이안 맥하그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계획과 조경을 결합한 교육을 함으로써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맥하그의 접근법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 자체가 조경가와 도시계획가 양쪽으로 훈련된 사람으로, 도시계획에 밝았기 때문입니다.
맥하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연생태계가 지역계획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유행이나 겉치장에 보다 열중한 듯합니다.
『Makeshift Metropolis』에 대해
Q. 1986년 출간된 『Home』에서 1995년의 『City Life』, 그리고 2010년의 『Makeshift Metropolis』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인테리어와 기술에 대한 어쩌면 내면적인 관심에서부터 보다 공공의 환경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주제가 변해 왔는데요.
A. 제 작업에 대한 분석은 제 소관이 아니지요. 저는 그저 해당 시점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들을 찾아왔을 뿐입니다. 어떤 때는 조금 멀리 떨어진 주제라 할지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 와튼스쿨 동료와의 연락과정에서 『Last Harvest 2007』를 쓰게 되었고, 올해 10월에 출간될 『How Architecture Works』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쓰게 된 것입니다.
Q. 건축가가 도시를 보는 것과 경제학자가 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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