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설계국제공모의 당선작이 4월 23일(월) 오늘 공개된다. 국립공원으로서 용산미군기지를 공원화 시키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이 결정된 2004년 이후로 8년만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논의는 용산미군기지의 이전과 함께 1990년부터 이미 진행돼 왔다. 20여년 동안 조경분야는 물론 많은 국민이 공원으로서 용산의 미래를 꿈꾸어 왔고, 그 구체적인 그림을 드디어 오늘 대면하게 된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011년 12월 27일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을 구체화시키는 설계 마스터플랜 도출을 위한 8개팀을 선정했다. 지명초청으로 치루어진 본 공모전에는 많은 전문가의 예상처럼 국내외를 대표하는 조경설계사가 8개팀이 주축을 이루었다. 조경분야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후 공모기간동안 라펜트로 공모전 당선유무를 떠나, 참가하는 8개팀 모두가 국내외를 대표하는 조경설계사를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팀이 생각하는 용산의 미래가 궁금하다는 조경인들의 의견도 개진되어 왔다. 무엇보다 서울의 마지막으로 남은 대규모 미개발지역이라는 사실은 프로젝트의 상징성 측면에 높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라펜트는 지명초청 8개팀 중 4개팀을 대상으로 이번 설계공모에 참가한 소감과 설계작품의 기본 컨셉, 그리고 용산공원에 거는 기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기획은 작품제출 마감일 이후(4월 16일) 제출작품 설명회(4월 22일)까지 촉박한 일정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8개팀 전체의 의견을 담지는 못하였다. -편집자주-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 Turenscape +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 Ingenieurgesellschaft + 한국그린인프라연구소 + Nial Kirkwood(하버드대) + 조경진(서울대)
용산공원 설계를 마쳤는데,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지난 몇 달간 그룹한 본사 및 뉴욕사무소, 중국의 투렌스케이프, 하버드의 닐 커크우드 교수, 그린인프라연구소, 독일의 지커박사, 서울대의 조경진 교수와 자문단 등 적지 않은 인원들이 합심해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밤낮으로 매진해왔다는 점이 우선 감동스럽습니다.
물론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팀원 전체가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느라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해 여기에 도달했다는 점을 특히 높게 자평합니다. 해외사의 역량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겨루면서 그룹한이 주도적으로 디자인을 이끌어왔다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입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한 프로젝트이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용산프로젝트는 그룹한 직원들의 전사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용산공원에 대한 전문가적 차원의 논의가 많았습니다만, 일반 시민 수준의 국민적 의견 수렴 과정이 미흡하다는 생각에 우선 그룹한 전직원들이 나서서 가족과 친지로부터 설문지를 수렴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인 수백명의 의견이 현실에 기반하면서 작가적 에고(Ego)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제안을 제출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투렌스케이프 팀과 서울과 북경을 오가며 우정을 쌓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서로의 문화적 특징을 느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까지 해외사와의 협력이 주로 북미 중심이었지만,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경쟁상대로서의 중국을 좀 더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설계과정에서 기본컨셉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나?
용산은 우리가 이제까지 다뤄왔던 공원과는 다릅니다. 국가적 상징성이나 군기지로서의 특수성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만, 어바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대상지가 지닌 광대한 공간적 스케일은 설계자에게 매우 생소한 과제, 즉 시간에 대해 숙고하는 임무를 부여합니다. 이 공원이 완공되고 성숙할 무렵이면 용산은 이미 21세기초에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틀을 넘어설 것입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로서 다음 세기까지 이 곳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그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훌륭한 도시 오픈스페이스는 시대의 사회적 요구를 적확(的確)하게 수용합니다. 옴스테드는 도시의 인프라로서 공원을 제시하여 공중보건과 공해, 상수도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남북전쟁으로 인해 파탄나 있던 인본주의적 질서를 재건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각 사회 계층이 보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보편적 자유라는 거대한 가치 안에서 공존해야 함을 역설하고,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누구든 차별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공적 공간'의 경륜을 제시했습니다. 그 비전이 워낙 장대했기에, 150년이 지난 지금도 옴스테드의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도 전통적 공원상을 탄생시킨 옴스테드 시대의 공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즉, 100년전 도시와 현재 도시의 차이입니다. 우선 전통적 제조산업의 이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국 도시에서는 공해문제가 사라졌습니다. 과거와 달리 도시는 매우 쾌적한 곳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노동하고 잠자는 생존의 장소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 이미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였던 마샬 맥루한은 미래의 도시를 엄청난 정보가 집적되는 메갈로폴리스(Information Megalopolis)로 예언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도시에서 생산과 소비는 더 이상 분리될 수 없게 되었으며, 학습과 레져 또한 그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기존의 토지 용도에 따른 조닝(Zoning)이 설득력을 잃고, 복합용도 개발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시로부터의 탈출구로서 공원이란 이미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현실에 맞지 않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룹한의 Yongsan Madangs 제출안은 '공원 = 레져'라는 기존의 사고틀을 과감히 깼습니다. 여가활동을 즐기고, 자연을 탐닉하는 공원의 기본적 기능을 갖추면서도, 정보와 사람의 집중이라는 도시 본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현재 미군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1000여동의 건물을 단순히 과거의 죽은 유물로 존치하거나 무분별하게 철거하지 않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정비해 재활용하고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 숭고한 뜻을 가진 단체에 무상으로 기부함으로써 전세계의 젊은이들과 우리 국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마당을 마련했습니다.
풍부한 자연과 문화인프라를 바탕으로 아이디어와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교류될 수 있는 토대를 제시했습니다. 각 건물에 의해 정의되는 구역을 마당으로 개념화하고, 건물의 수명과 미래의 사회적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습니다. 마당의 용도를 결정하는 것은 SNS를 비롯,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시민의 적극적 참여입니다.
최대의 유연성이 부여한 마당과 대비되어, 또 다른 주요 디자인 언어가 되는 플랫폼은 넓은 면적의 공원을 토지 반환 직후에 곧바로 이용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즉, 현재 트레이닝필드, 운동장, 잔디밭, 숲 등으로 이루어진 오픈스페이스(부지의 약 1/3)를 연결해 최소한의 조성공사 후 개방함으로써 시민들이 용산의 광대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플랫폼을 따라 물길과 서식지를 복원하여 용산공원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적 통로의 프레임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공원 주변부와 도시가 접하는 지점에는 휴먼스케일의 마당을 우선 조성하여 각 커뮤니티로부터의 접근성을 강화하였고, 용산을 지역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으로 되돌려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룹한의 안은 고정된 마스터플랜을 넘어 마당과 플랫폼이라는 설계언어를 사용하여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개발 전략을 제시하는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박명권 대표((주)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용산공원에 거는 기대?
파리의 라빌레뜨 이후 센트럴파크의 아성을 넘어서 새로운 현대 공원의 상을 제시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습니다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전통적 공원의 아류에 머문 측면이 있습니다. 여전히 공원의 주요한 기능을 레크리에이션으로 정의하고 도시와 공원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용산공원 발주처는 새로운 도시 오픈스페이스의 비전을 제시함을 공모전의 가장 큰 목표로 삼았습니다. 지금 각 도시들은 삶의 질 향상이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고, 용산은 곧 서울과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브랜드가 될 것입니다.
이번 공모전이 한국민의 역사의식과 철학의 깊이가 담긴 새로운 도시공간의 개념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공원으로서 시민들의 수요에 시의적절하게 응답할 수 있는 매력적인 나눔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_ 박명권 대표(그룹한), 최이규 소장(그룹한 뉴욕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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